지아이이노베이션 GI-102는 왜 단독으로도 효과가 있을까? | 면역항암제 표적화기술 이해하기
최근 바이오업계에서 주목받는 소식이 있습니다. 지아이이노베이션의 면역항암제 GI-102가 유럽종양학회(ESMO 2025)에서 발표한 임상 결과가 그것입니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기존 면역관문억제제(키트루다 등)에 반응하지 않던 환자들에게서 단독요법만으로도 25%의 반응률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보통 면역항암제는 병용요법으로 써야 효과를 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GI-102는 어떻게 혼자서도 효과를 낼 수 있을까요? 그 비밀은 40년 전부터 연구되어 온 'IL-2'라는 면역 물질과, 이를 종양에 정확하게 전달하는 '표적화 기술'에 있습니다.
IL-2: 최초의 면역항암제, 그러나 실패의 역사
IL-2(인터루킨-2)는 1976년 발견된 이후 암 치료의 희망으로 여겨졌습니다. T세포와 NK세포를 강력하게 증식시키는 이 물질은 1984년 FDA 승인을 받은 최초의 면역항암제가 되었습니다. 이 항암제의 원리는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것이 아닌 주변의 면역 시스템을 이용하여 억제하는 방식입니다. 신장암과 흑색종 환자 중 일부는 IL-2 단독요법만으로 완치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고용량 IL-2는 심각한 혈관 독성을 일으켰고, 낮은 용량으로는 효과가 거의 없었습니다. 더 치명적인 문제는 IL-2가 조절 T세포(Treg)까지 활성화시켜 오히려 면역 반응을 억제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차세대 IL-2의 도전과 좌절
2000년대 이후 제약사들은 IL-2의 단점을 보완한 '차세대 IL-2'를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BMS의 벰페그알데스류킨(NKTR-214)과 Sanofi의 SAR444245입니다.
특히 BMS는 넥타로부터 약 4조 원을 들여 NKTR-214를 인수하며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습니다. NKTR-214는 3상 임상(PIVOT IO-001)에서 실패했고 단독요법 효능이 전무했습니다. SAR444245도 58명 환자 중 단 1명만 부분 반응을 보여 단독요법 반응률 0%로 개발이 중단되었습니다.
이들의 공통적인 문제는 표적화되지 않은(Untargeted) IL-2였다는 점입니다. PEG를 붙여 반감기를 늘리거나 용량을 조절했지만, IL-2가 종양이 아닌 전신에 퍼지면서 독성은 줄지 않고 효과도 제한적이었습니다.
GI-102의 차별점: 종양을 찾아가는 IL-2
지아이이노베이션의 GI-102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을 택했습니다. CD80이라는 단백질을 이용해 IL-2를 종양 미세환경으로 직접 유도하는 방식입니다.
작동 원리: 3가지 핵심 메커니즘
1. 종양 표적화 (Tumor Targeting)
CD80는 면역세포와 종양 미세환경에 많이 존재합니다. GI-102는 CD80에 결합하여 종양이 있는 곳으로 선택적으로 이동하고, 그곳에서만 IL-2를 방출합니다. 마치 GPS가 장착된 미사일처럼 목표 지점만 공격하는 것입니다.
2. 면역세포 증폭 (Immune Cell Expansion)
종양 내에 도착한 IL-2는 CD8+ T세포와 NK세포를 수백 배 증식시킵니다. 이 세포들은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전투병'입니다. GI-102는 전투병의 수를 늘리는 동시에, 각 전투병이 더 강하게 공격하도록 활성화시킵니다.
3. 브레이크 해제 (Treg Suppression)
기존 IL-2의 치명적 약점이었던 조절 T세포 활성화를 억제합니다. IL-2v3이라는 3개 아미노산 변이체를 사용해 CD25(Treg가 선호하는 수용체)에 대한 결합력을 줄였습니다. 브레이크는 풀리고 가속 페달만 밟는 셈입니다.
임상 데이터: 숫자로 보는 차별성
ESMO 2025에서 발표된 GI-102의 임상 1/2상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전이성 흑색종 환자 (N=12)
객관적 반응률(ORR)은 25% (3/12)를 기록했고, 질병조절률(DCR)은 83.3% (10/12)에 달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모든 환자가 면역관문억제제 불응 또는 내성 환자였다는 것입니다. 즉, 기존 치료에 실패한 난치 환자군에서 이러한 결과를 얻은 것입니다.
경쟁사 대비 우월성
| 약물 | 개발사 | 단독요법 ORR | 상태 |
|---|---|---|---|
| GI-102 | 지아이이노베이션 | 25% | 임상 진행 중 |
| NKTR-214 | Nektar/BMS | 0% | 3상 실패 |
| SAR444245 | Sanofi | 0% | 개발 중단 |
| 넴바류킨 | Alkermes | 13% | 임상 진행 중 |
| 키트루다+렌비마 | MSD | 21.4% | 승인 병용요법 |
키트루다와 렌비마의 병용요법과 비슷한 수준을 단독요법만으로 달성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다양한 고형암에서도 효과 확인
비소세포폐암(N=6)에서는 부분관해(cPR) -38.2%를 기록했고, 난소암(N=6), 방광암(N=2)에서도 각각 cPR -36.3%, -44.7%, -46.2%의 종양 크기 감소를 보였습니다. 메르켈 세포암(N=1)에서도 반응이 확인되었습니다.
피하주사 제형: 또 하나의 게임 체인저
2024년 12월, GI-102는 피하주사(SC) 제형 임상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투약 방식의 변화가 아닙니다.
기존 정맥주사(IV) 제형의 한계
기존 방식은 병원 방문이 필수이고, 투여 시간이 수 시간 소요되며, 의료 비용도 높았습니다.
피하주사 제형의 장점
자가 투약이 가능해지고, 5분 내 투약이 완료되며, 외래 치료가 확대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국소 림프절을 경유하면서 종양 내 농도가 증가한다는 점입니다.
알테오젠이 MSD와 키트루다 피하주사 제형 계약 후 주가가 540% 상승한 사례처럼, 피하주사 제형은 시장 가치를 크게 높일 수 있습니다.
FDA 패스트트랙 지정: 글로벌 시장 가능성
2025년 10월, GI-102는 FDA로부터 패스트트랙(Fast Track) 지정을 받았습니다. 이는 심각한 질환에 대한 미충족 수요를 해결할 잠재력이 있다고 FDA가 인정한 것입니다.
패스트트랙의 의미
우선심사(Priority Review)가 가능해지고, 신속승인(Accelerated Approval)도 가능해집니다. FDA와 긴밀한 소통 채널이 확보되며, 개발 기간도 단축될 수 있습니다.
면역관문억제제 불응 환자들은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치료 옵션이 매우 제한적입니다. GI-102는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시장 기회: 17조부터 26조까지
GI-102가 노리는 시장은 다층적입니다. 먼저 단독요법 시장으로 흑색종 시장만 해도 약 17조 원(2030년) 규모로 예상되며, 특히 면역관문억제제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들은 아직 뚜렷한 치료 옵션이 없는 블루오션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병용요법 시장도 열려 있습니다. 다이이찌산쿄의 Enhertu®와 병용하면 약 26조 원, MSD의 Keytruda®와 병용하면 약 19조-20조 원 규모의 시장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더 흥미로운 가능성은 고가의 CAR-T 치료를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옵션입니다. CAR-T는 환자 맞춤형 제조가 필요해 비용이 수억 원에 달하지만, GI-102는 off-the-shelf(즉시 사용 가능) 제품으로 접근성이 훨씬 높습니다. 실제로 키트루다와의 병용요법에서 완전관해(CR) 사례가 확인되면서 이러한 가능성이 더욱 주목받고 있습니다.
임상 개발 계획과 마일스톤
현재 진행 중
임상 1/2상(GII-102-P101)이 한국과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IV 단독 및 ADC 병용, 키트루다® 병용, SC 단독 등 다양한 조합으로 표준치료 실패 고형암 환자 340명을 대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향후 계획
2025년 하반기에는 임상 2/3상 계획 제출이 예정되어 있고, 2026년에는 흑색종 2/3상 임상(GII-102-P201, N=100)이 시작됩니다. 2027년에는 상업화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메이요 클리닉, 클리블랜드 클리닉 등 미국 최고 암센터와 협력 중이며, MSD와는 키트루다 병용요법 공동임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마무리: 40년 숙제를 푸는 열쇠
IL-2는 40년간 암 면역치료의 '성배'이자 '독배'였습니다. 강력한 효과와 심각한 독성 사이에서 수많은 제약사가 도전했고 실패했습니다.
GI-102는 '표적화'라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해법으로 이 문제에 접근했습니다. 종양이 있는 곳에만 IL-2를 전달하고, 그곳에서만 면역세포를 활성화하며, 면역 억제 환경까지 극복하는 3중 전략입니다.
ESMO 2025 발표 결과는 이 전략이 실제로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기존 치료에 실패한 환자들에게서 25%의 반응률, 83.3%의 질병조절률은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더 이상 치료 옵션이 없던 환자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 것입니다.
물론 갈 길은 멉니다. 임상 2/3상을 거쳐 실제 승인을 받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것이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는 충분히 희망적입니다.
40년 숙제를 푸는 열쇠가 GI-102에 있을지, 앞으로의 임상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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