펩트론 28년사: 연구실에서 시총 7조 기업까지, 그리고 지금은?
28년 전, 최호일 대표를 포함한 연구원들이 대전에서 펩타이드 신약 개발에 뛰어들었을 때만 해도 이들이 글로벌 제약사와 어깨를 나란히 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2015년 코스닥 상장 당시 주가는 3만원대. 무려 8년 동안 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죠. 그런데 2023년부터 무언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제1막: 1997년 11월 21일, IMF의 날 창업하다
펩트론의 창업일은 한국 경제사에 잊혀지지 않을 날입니다. 1997년 11월 21일, 바로 IMF 외환위기가 공식 선언된 그날이었죠. 연세대 생화학과 박사 출신으로 LG화학 바이오텍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최호일 대표는 31살의 나이에 모든 것을 걸고 창업에 나섰습니다.
안정적인 대기업 생활을 포기하고 2년 동안 아내를 설득한 끝에 얻어낸 창업의 기회. 하지만 창업 서류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터진 외환위기는 그에게 첫 번째 시험이었습니다.
달러가 하루아침에 두 배로 뛰면서 실험장비 도입은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최 대표는 결국 펩타이드 합성 시스템과 장비를 직접 고안하고 제작해야 했습니다. 1998년 1월, 사업 개시 두 달 만에 벌어들인 수입은 580만원. 참담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어렵게 만든 '원가절감형 펩타이드 고속합성기술'은 훗날 펩트론의 두둑한 밑천이 되었습니다.
• 1997년 11월: IMF 외환위기 당일 창업
• 1998년: 직접 제작한 합성기로 펩타이드 생산 시작
• 2년간 매출 580만원 → 수천만원으로 성장
• 대전 연구실에서 묵묵히 기술 개발
제2막: 2003년, FDA가 인정한 기술력
창업 6년 만에 첫 번째 전환점이 왔습니다. 2003년 대웅제약과 손잡고 개발한 '루피어데포'가 FDA 승인을 받은 것입니다. 전립선암 치료제인 이 약물은 펩트론의 핵심 기술인 '약효지속형' 플랫폼이 처음으로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은 사례였습니다. 2023년 한 해에만 325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20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팔리고 있죠.
이 성공의 비밀은 '스마트데포(SmartDepot)'라는 독특한 기술에 있었습니다. 2007년에는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초음파 분무 건조를 이용한 서방성 미립구 주사제 제조 공정 기술'로 신기술(NET) 인증을 받았습니다. 이 기술은 약물을 미세한 구슬 형태로 만들어 체내에서 천천히 방출되게 하는 것인데, 핵심은 27~30G라는 매우 가는 주사침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환자의 고통을 줄이면서도 약효는 한 달 이상 지속시킬 수 있었죠.
제3막: 2015년, 코스닥 상장 그리고 8년의 정체
2015년 7월 22일 코스닥에 상장되었으며, 상장 첫날 상한가로 가격제한폭까지 상승하여 증시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공모가 1만 6000원으로 시작한 펩트론의 시가총액은 약 900억원이었습니다. 18년간 대전 연구실에서 묵묵히 기술을 개발해온 결과였죠.
하지만 상장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주가는 8년 동안 3만원대를 넘지 못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펩트론은 여러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파킨슨병 치료제 임상이 생산 이슈로 4년째 지연되었고, 대웅제약과의 계약기간이 만료되면서 매출의 절반에 달했던 전립선암 치료제 관련 수입이 끊겼습니다. 매출은 2021년 66억원에서 2022년 58억원, 2023년 33억원으로 매년 감소했죠.
• 8년간 주가 3만원대 정체
• 임상 지연과 생산 이슈
• 매출 66억 → 33억원으로 반토막
• 관리종목 편입 위기
제4막: 2023년, 비만치료제 열풍과 함께 찾아온 기회
전환점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왔습니다. 2023년 전 세계를 강타한 비만치료제 열풍이었죠.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와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이 약물들의 단점인 '매주 주사'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에 관심이 쏠렸습니다.
지난해 초(1월 2일 기준) 7720원에서 시작한 펩트론의 주가는 등락을 거듭해 지난달 21일 종가 기준 3만 500원까지 올랐습니다. 무려 370.5%가 상승한 수치입니다. 주가가 급등한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펩트론의 스마트데포 기술이 매주 맞아야 하는 비만치료제를 한 달에 한 번만 맞아도 되게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감이었죠.
2024년 들어서도 상승세는 계속됐습니다. 한때 시가총액은 5조원을 넘어서며 코스닥 시총 4위까지 올랐습니다. 1997년 창업 이래 27년 만의 전성기였죠.
제5막: 2024년 10월, 일라이릴리가 찾아오다
2024년 10월 7일은 펩트론 역사에 기록될 날입니다. 시가총액 1,200조원의 글로벌 제약 거인 일라이릴리가 펩트론과 MTA(물질이전계약)를 체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릴리의 시가총액은 약 1200조, 펩트론은 1조 6000억으로 750배 차이임에도 릴리는 펩트론을 파트너로 선택했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할까요? 릴리의 비만치료제 '마운자로'는 매주 주사를 맞아야 합니다. 만약 펩트론의 기술로 이를 월 1회로 줄일 수 있다면? 시장 판도가 완전히 바뀔 수 있습니다. 업계 전문가들은 "14개월간의 공동연구 후 2025년 말~2026년 초 본계약이 체결될 경우 1조원 이상의 빅딜이 가능하다"고 전망합니다.
하지만 2025년 6월, 릴리가 스웨덴 카무루스와 1.2조원 규모 계약을 체결하면서 불안감이 커졌습니다. 시가총액이 이틀 만에 1조 7000억원 가까이 증발했죠. 하지만 업계에서는 두 기술이 상호보완적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제6막: 2025년, 새로운 도전
2025년 7월, 펩트론은 드디어 자체 개발한 '루프원'의 식약처 품목허가를 받았습니다. 창업 28년 만에 독자 제품으로 국내 시장에 진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10월부터 본격적인 매출이 발생하고 있죠.
같은 해 10월, 서울에 R&D 센터를 개소하며 새로운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약효지속형 기술(DDS)과 ADC(항체-약물 접합체) 신약 개발을 이원화해 리스크를 분산하겠다는 것이죠. 특히 IEP(Internalization enhancing peptide)라는 차세대 펩타이드 플랫폼 기술을 공개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 1997년: IMF 당일 창업, 직접 만든 합성기로 시작
- 2003년: 루피어데포 FDA 승인, 글로벌 기술력 입증
- 2015년: 코스닥 상장, 하지만 8년간 정체
- 2023년: 비만치료제 열풍으로 주가 370% 급등
- 2024년: 일라이릴리와 MTA 체결, 시총 5조원 돌파
- 2025년: 루프원 출시, 서울 R&D 센터 개소
에필로그: 대전 연구실에서 글로벌 무대로
28년 전, IMF의 칼바람 속에서 시작한 펩트론의 여정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최 대표의 펩트론 경영은 시작부터 가시밭길을 걸어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필 회사를 창업하던 날 IMF 사태가 터졌다는 것은 업계에서 유명한 일화 중 하나다."라는 업계 관계자의 말처럼, 펩트론의 시작은 극적이었습니다.
580만원으로 시작한 매출이 이제는 루프원 출시와 함께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습니다. 시가총액 6조 6000억원의 코스닥 상위 기업이 되었죠.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멉니다. 일라이릴리와의 본계약 성사 여부, 경쟁사들과의 기술 경쟁, 관리종목 편입 위기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최호일 대표는 "바이오 신약 연구개발 경험과 신약 개발부터 생산까지 가능한 독보적인 경쟁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성장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최 대표가 처음 꿈꿨던 '자신의 브랜드가 붙은 제품 박스'는 이제 현실이 되었습니다.
대전의 작은 연구실에서 시작해 글로벌 제약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펩트론. 이들의 28년 여정은 한국 바이오 산업의 축소판이자, 포기하지 않는 연구자 정신의 증명입니다. 과연 펩트론은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을까요?
투자자들에게 펩트론은 여전히 '고위험-고수익' 기업입니다. 하지만 IMF의 한파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28년간 한 우물을 판 이들의 집념은, 단순한 주가 차트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